싱싱무 소개글 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세 아이와 시골에서 살아가는 40대 배 나온 평범한 아저씨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생활을 꿈꾸며 농촌유학을 와서 1년이 지난 지금, 나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중입니다.

반복, 점검, 보고하는 일보다 개선, 설계,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을 좋아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며

지금 내 삶이 수시로 의미가 있는지 사색에 잠기며

나 자신이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을 하다가 잠이 들며

팍팍하고 어려운 삶에서 도망치기보다 방향을 바꾸어 개선하려고 하고

지식을 설명, 정리, 개념화, 비유, 체계화를 통해 컨텐츠를 재구성하는 것을 좋아하고

조직생활보다는 자율성이 높은 1인 구조 혹은 소규모를 좋아하고

사람을 직접 많이 상대하는 역할보다는, 사람 문제를 대신 정리해주는 역할을 좋아합니다.

“몽상가”일수도 있지만 “현실 기반 문제해결형 인간”에 가깝습니다.

-추상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현실에 적용 가능한지가 중요하고

-철학과 원리를 중시하고

-시스템 구조를 들여다보며 개선하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 깊게 생각해서 논리와 경험을 연결한 후 “생각의 체계화”를 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고민상담을 한다면 저는

기꺼이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사람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고민-현실-시스템-구조-등등을 체계화하고 정리를 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래 니가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줘서 너무 고마워~” 라는 말 보다는

“니 덕분에 복잡한 내 머릿속이 한 번에 정리되서 정신이 맑아졌어~”

라는 말을 들으면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사진과 함께 제 소개를 시작하겠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업데이트를 할 예정이고, 대량의 사진과 많은 글이 포함되어 있으니

꼭!!! 시간 여유가 되시는 분들만 이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부산 토박이 “싱싱무”

해운대 미포정거장

저는 대학교, 군대를 제외하곤 줄곧 부산에서 살아온 부산토박이입니다.

중간 중간 다른 지역에 머물기도 했지만

가족들이 있는 고향이 좋아서 부산에서만 살았습니다.

서울은 사람도 많고 복잡하고 정신이 없었고,

대학교를 다녔던 대전은 너무 조용하고 심심했으며,

군생활을 했던 강원도는 너무 덥고, 추웠습니다.

사람도 적당히 있고

웬만한 시대흐름을 따라가고

제가 좋아하는 롯데자이언츠가 있는

나름 제2의 도시라고 불리는 부산에서 꽤 오래 살았네요.

(부산 산다고 매일같이 회 먹고, 바다 근처니까 수영도 잘하고, 영화에 나오는 것 마냥 억센 사투리쓰고, 해운대나 광안리에 자주 가지 않습니다 ㅎㅎㅎㅎ)


물리치료사 & 재활 트레이너

서울대학교병원 실습생 시절

중학생 때 산에 소풍을 가서 친구들과 뛰어놀다가

오른쪽 발목을 심하게 다쳤었습니다.

6개월 정도는 걷지도 못했고, 1년이 지나서 겨우 편히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부상이었는데

매일같이 다니는 병원의 물리치료사 선생님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친절했고

다정했고

도와주는 모습이 멋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진학을 물리치료학과로 정했고

대한민국 1기 물리치료 선배님이자, 대한민국 물리치료에 관하여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교수님을 따라 무작정 대전으로 가서 학업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주고 가치있는 일을 하는 물리치료사 선생님들이

어릴 때 좋은 기억으로 남았었나 봅니다.

좌 : 학술대회 논문발표 / 우 : 소아물리치료 시절

우등생, 장학생은 아니었지만 학술대회에 논문발표를 하고 우수상도 받았고,

첫 직장에 취업해서는 “소아물리치료”를 했었습니다.

태어날 때 부터 아픔을 가지고 있는 어린친구들을 볼 때 마다 뭉클했습니다.

그래서 학부생 때 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열심히 일했고 대학원도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2013년도 당시 제 월급은 세후 140만원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전에 혼자 살면서 월세를 내고, 학비를 내고, 생활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6개월 뒤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머리속에는 이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돈을 벌어야 되겠다.


월드짐 재활트레이너 시절 : 닉네임 ReX

그렇게 해서 주말에도 쉬지 않고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친목이 아니라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어 헬스장에서 “재활트레이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물리치료사 출신의 트레이너가 아주 귀했기 때문에 시장가치가 높았고

제가 좋아하는 운동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20대 재활 트레이너 시절

헬스장에서 저의 업무는

회원님들이 몸짱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아프지 않게 일상생활로 복귀시켜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올바른 자세에서 운동하기,

척추건강 스트레칭,

통증을 발생시키는 자세 교정하기,

기초체력 올리기,

운동에 재미를 느끼고 자신감 키우기

시간이 갈수록 표정이 밝아지고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가는 회원님들을 보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저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새벽 6시에 출근해서 저녁 11시까지 일하는 생활을 하다보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20대 후반이 되자 결혼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고, 불현듯 미래에 대한 걱정까지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가 재촉한 것도 아닌데 너무 직진만 했던 것 같습니다……)


결혼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하루 17시간 일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20대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일했습니다.

미련할 수도 있지만, 주변에서 지켜보는 누군가에게는 성실하고 믿음직한 청년이었나 봅니다.

지금의 아내를 소개받았는데,

당시 아내는 다른 헬스장의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었고, 퇴근시간이 저와 같은 오후 11시였습니다.

부족한 잠을 참아가면서 퇴근하고 짧고 강한 연애를 이어가고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결혼을 하기 위해서 포잡을 뛰었습니다…!!

4개 일을 했습니다….

1.새벽에 일어나서 동네 헬스장을 오픈하고 청소를 했고,

2.관장님이 오시면 헬스장으로 트레이너생활을 하러 갔습니다.

3.주말에는 체육평생교육원에서 강사로 활동을 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했고,

4.일주일 중 여유가 있는 시간에는 열심히 지식전달과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습니다.

부산 MBC 건강프로그램 출연

세션체육평생교육원 강사 활동

몬스터짐 칼럼니스트 활동

돌이켜보니 몸으로 떼우는 미련한 방법이지만

아내의 부모님과 주변사람들은 믿을 만한 남편감이라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무슨 깡으로 이랬는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ㅎㅎ

사랑의 힘이 참으로 대단한가봅니다~


병원생활 시작

결혼을 하니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루 17시간씩 일하고, 자정이 다 되어 집에 들어오는 일을 계속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해서 아내와 상의한 후 병원에 취직해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하고,

공휴일은 쉬고,

안정적인 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형외과 도수치료하던 시절

저는 한 번 직장을 얻으면 뚝심있게 계속 버티면서 다니는 성향입니다.

취직한 정형외과에 막내로 입사해서 도수치료를 시작하게 되었고, 7년을 근무했습니다.

7년동안 제 손을 거쳐간 환자분들이 많아지며 커리어가 쌓여갔고,

막내에서 시작해 가장 높은 센터장으로 승진도 했습니다.

이때부터 병원운영의 일원 멤버가 되어

홈페이지제작, 블로그관리, SNS운영 등을 하면서 온라인 마케팅과 컴퓨터 소프트웨어들과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제로에서 시작한 분야라서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으로 무식하게 부딪힌 적도 많았고, 병원에서 치료만 하는 직원이 아닌 전반적인 관리자로서 많은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이 되다

가장 소중한 저의 보물입니다.

20대의 앞만보고 달린 날들과 달리

30대는 가족과 함께하는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2019년에 첫째딸을 낳고, 다음 해인 2020년에는 아들, 딸 남매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2년새 아이셋을 낳았죠…ㅎㅎㅎ

평일에는 병원에서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어느새 저는 대한민국 평범한 가장이 되어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살았습니다.

라고 해피엔딩일 줄 알았으나….

제 팔자는 평범을 거부하는가 봅니다…

나름 가장이라고 항상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노력을 더 많이했습니다.

남들과 같이 따라가면서 살기 바빴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월세로 시작해서

전세 4000

전세 9000

아파트구매 후 매도

전세 2억 3000

간 크게 47평 아파트를 구매한 상황입니다.

거기에 차도 2대를 운행했으니…

가장의 무게인지 남들 따라가는 삶을 살려고 아둥바둥거리는 건지 그 때는 몰랐습니다.


가장의 무게

아이가 셋이라고 하면 다들 놀라기도 하셨지만,

어깨가 무겁겠다며 걱정하는 분들이 더 많았습니다.

“돈 많이 벌어야겠네….”

“클수록 돈 많이 들어갈텐데….”

.

.

.

운영하는(했던) 유튜브 채널들

본업외에 다른 일을 하면서 추가수입을 얻기 위한 발버둥을 쳤습니다.

유튜브채널을 개설하고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올리고…

재활유튜버로 이름을 알리고 성공한 후배가 있는데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예상보다 성장이 잘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퇴근하고 아이셋을 보고있는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영상을 촬영하고 집에오면 저녁9시가 넘었고,

밀린 집안일을 도와주고 아내와 대화도 하고, 아이셋과 놀아주면 어느새 자정이 되기 일쑤였고,

새벽에는 제가 아이들 젖병물리는 담당이었기에….

첫째, 둘째, 셋째 차례대로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면 다음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깊게 잠을 자는 시간은 병원 점심시간 뿐이었습니다.

영상편집할 시간이 전혀 없었죠….

그래도 유튜브에 관한 알고리즘, 공식, 성공방정식 등 많이 배웠습니다.

다시 본업으로 돌아와서 열심히 병원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또 근질근질거립니다.

이번에는 도장깨기 컨셉으로 운전면허시험장으로 향했습니다.

2006년에 취득한 1종보통 운전면허증 하나만 있었는데,

유튜브를 보면서 쉐도우훈련을 열심히 하여

1종대형, 1종특수 대형견인, 2종소형까지 3가지 운전면허를 추가 취득했습니다.

운전가능한 차량은 All Vehicles 라고 면허증에 나와있습니다.

버스기사를 할 수도 있고,

츄레라(트레일러)기사를 할 수도 있고,

할리데이비슨도 운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케팅회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 때는 다른 병원에서 근무할 때인데 주변에서 컴퓨터로 먹고 살 정도 능력이 된다고 펌프질을 하는 바람에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본격적으로

홈페이지제작

블로그관리

매출올리는 심리글쓰기

네이버 플레이스관리

영상편집

이미지제작 등

하나씩 모은 저의 재능들이 합쳐져서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병.의원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매출을 향상시켰고,

감사의 의미로 기프티콘 선물세례와, 점점 늘어나는 컨설팅 의뢰도 받았습니다.

물리치료사지만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고, 잡다하게 쌓은 실력과 경험들이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었습니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주는 친구들, 병.의원 관계자, 지인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간단한 이미지와 설명같은 일러스트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친구가 운영하는 베이스볼 아카데미에 쓰일 이미지 제작도 도와주고

10년 가까이 이어가고 있는 제 사회인야구팀의 팀마크도 제작해주고

배울점 많고 존경하는 친한 동생의 사업장에 이미지도 제작해주는 등

제 바운더리 안의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었습니다~

몇 달 뒤, 이번에는

수술 후 재활이 필요하신 분들,

주사나 약물보다 운동이 효과를 볼 수 있는 상태이신 분들,

기초체력을 증진시키고 싶으신 분들,

체형을 바르게 하고 싶으신 분들,

더 나은 컨디셔닝이 필요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재활운동센터를 창업했습니다.

망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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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병.의원 마케팅을 성공시킨 노하우와,

지금까지 쌓은 저만의 디지털 노하우를 통해서

수많은 상담의뢰와 센터 레슨예약이 잡혔습니다.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일했고,

회원님들의 불편감을 조금씩 해결해 주어서 입소문이 나며

창업비용은 2개월만에 회수되었습니다.

20대는 앞만보고 일만 주구장창했고,

30대는 아이셋을 낳고 계속 일하면서 또 다른 분야를 많이 연구했습니다.

30대 중후반에 제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입니다.

왜 그렇게 빡세게 사노??

골병들겠다고 주변에서 많이 걱정을 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더 나은 방법이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많이 배우고 적용했을 뿐인데

쉬엄쉬엄 하라고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정말로 맞는 말이었습니다.

인생은 위, 아래, 위, 아래 반복이라고 하죠.

잘 될 때가 있으면 안 될 때도 찾아오는 것이고

좋다가도 안 좋을 때도 있는 것이고

오락가락한다는데 정말로 그렇더라구요.


어느새 다가온 불혹의 위기, 남은 절반의 인생을 생각하다

2개의 모니터

태블릿 1대

노트북 1대

현실판 디지털노마드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디지털노가다꾼이 되어 있었습니다.

프로그래밍을 한다고 코딩과 씨름하는 모습입니다…ㅎㅎ

뱃살은 점점 나오고, 흰머리는 부쩍 늘어만 가고~

신체변화도 신경 쓸 때가 되었지만

이제 진지하게 남은 중년의 삶에 대해서도 고민할 시기가 왔습니다.

저도 모르고 있는사이 정말…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네요.

‘도수치료, 운동치료를 중년이 되어서도 계속 할 수 있을까?’

‘힘, 체력 모두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버틸 수 있을까?’

‘병원에서도 슬슬 압박이 들어오는데 어떡하지?’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

"내가 왜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있을까?"

성장하고싶은 저만의 욕심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만

세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풍족하지는 않아도 좋은 거 먹이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 주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중년으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고

무엇에 집중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족이었습니다.

가족을 먹여살린다는 가장의 핑계를 대면서 제 욕심을 위해 달려오지 않았나 싶거든요…

힘들거나 지칠때면 항상 웃어주고 제 편을 들어주는 것은 가족밖에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함께 시간을 보낼 때 행복한 것도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으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어졌습니다.

항상 잠이 부족했지만 기저귀 차고 분유먹는 모습은 너무 이뻤습니다.

하나가 감기 걸리면 셋 다 감기 걸려서 독감이라도 걸리는 날에는..

병원입원에 링거까지…

링거꽂은 아이셋과 함께하는 병동생활은 신생아 케어보다 힘들었습니다 ㅎㅎㅎ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그랬냐는듯이 이쁘게 자라줘서 어릴 때 하는 효도도 많이했습니다.

언제봐도 사랑스럽거든요~

30대는 어린아이들을 키우면서 너무 일만하고 살았습니다.

솔직히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더 나은 삶을 맞이 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지금 당장 내 곁에 있는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더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게 중요하더라구요.

그래서 다니던 병원을 단박에 그만두고 무작정 시골로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작년 2월말부터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시골 전원주택에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해서 바뀌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기운을 받고있습니다~

아파트만 살아오던 것과는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됩니다.

당연히 좋은쪽으로요~~


시골생활 (귀촌생활)의 시작

전원주택에 처음 살다보니 모든 것이 낯설기도 하고 신기했습니다.

텃밭을 가꿔서 상추, 대파, 감자, 고추도 심어서 키워보고

아이들은 생활한복을 입고 학교를 가고

음식물 잔반은 이장님께서 키우시는 닭들에게 주고~

가장 좋은 것은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는 것 입니다.

항상 얼굴에 미소를 띄고있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생글생글 생기가 생겼습니다^^

도심속 아파트에서 살다가 이사 온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의 생활.

아이들은 무엇이 그렇게 좋을까요?

속내는 모르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니 저희 부부도 아주 만족하는 시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사는 곳은 시골이지만

저는 제가 가진 디지털역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홈페이지제작, 이미지제작, 영상편집, 블로그, 매출향상 심리글쓰기, 컨설팅, 온라인 마케팅 등

노트북 1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시골 디지털노마드가 시작되었습니다.

“생각정리소”가 바로 목표입니다.

하지만 시골생활을 조금 더 즐겨보고 싶어서 6개월 정도 시골에 녹아들기로 했습니다.

하늘,산,물이 모두 보이는 경치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과 함께 프리젠테이션 작업을 하기도 하고,

이렇게 반응형 웹페이지, 홈페이지를 제작해주기도 했습니다.

브랜딩 블로그 운영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블로그에서 검색하면 질 좋은 글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더 빨리 하려고 하고, AI의 도움을 받아서, 대충 정보를 긁어와서 포스팅하는 현실이죠…

저는 느리지만

명확한 잠재고객을 설정한 후,

고객의 관심유도

고객의 집중

해결방안 제시

특별함 어필

행동촉구

라는 심리글쓰기 구성을 이용해서 포스팅 가이드를 컨설팅하고 있습니다.

인터넷만 있으면 이렇게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원활하게 일을 할 수 있어서 시골에서의 디지털노마드 생활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함께하는 디지털노마드 그룹

그리고 Ing…

저 또한 아직 배울점이 많고 성장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여러 대표님과 코치님들께 조언을 많이 구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공유해서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응원하고, 격려하고 축하해줍니다^^

몸은 시골에 와 있지만, 마음만은 아직까지 소중한 사람들과 아주 가깝게 붙어있는 느낌입니다.

시골에서의 생각정리소 디지털노마드

이제 시작입니다~


뒤돌아보니니

이 글이 1시간만에 완료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걸렸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나 사진을 찾아보니 시간이 꽤 걸렸는데,

저도 잊고 살았던 수많은 일들과 추억들이 있었습니다.

웃긴건 앞만 보고 달리고, 열심히 일하고 아이셋 키우면서 할 건 다 했더라구요 ㅎㅎㅎ

20대초부터 시작된 사회인야구생활~

아이들이 어릴 때는 몇년 동안 못했지만, 유모차 끌고 같이 가서 할 정도로 열정이 남다릅니다.

원래 저의 어릴 때 꿈이 야구선수 였거든요..ㅎㅎㅎㅎ

꽤 던지는 편이죠?….ㅎㅎ 쑥스럽네요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전거 대회도 수차례 참가했구요

아내에게 크게 한 번 미안해하고

혼자 제주도 국토종주 이틀만에 해치우기도 하구요

조남진 선수, 김동현 선수와 잠깐이지만 커피도 한 잔 해본 적도 있고,

걸리면 죽을 것 같은 돌주먹을 가진 효도르와도 만나보았구요

배명호 격투기 선수을 컨디셔닝 한 적도 있었구요

(전)야구선수 채태인 선수를 컨디셔닝 한 적도 있었구요

(전)롯데자이언츠 야구선수, 최강야구에서 활약한 김문호 선수에게 레슨도 받고 배팅장갑도 선물로 받기도 하구요

기타 등등등

사진을 찾으면 더 있겠지만,

여기저기 많이 찾아다니고 많이 만나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ㅎㅎㅎ

이제 마지막으로 저의 천생연분이자 끼 많은 와이프를 간략히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슈프림팀 뮤직비디오

아내는 연극영화과를 진학했다가 바로 서울상경하고 하고싶은 댄스를 시작했습니다.

끼가 넘쳐흘러서 다양한 활동을 많이했더라구요~

저한테 시집와서 아이셋 낳아서 고생만하고,

아름다운 아가씨에서 아줌마가 된 모습이 늘 안쓰러웠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제가 많이 서포트 해주면서 아내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이렇게 트로트가수 백업댄서를 하거나, 다양한 행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이들은 저 혼자 봐야….ㅎ)

TV에서만 보던 연예인들을 수시로 만나고 있는게 참 신기합니다만

활짝 웃고있는 아내 얼굴을 보면 안 보내 줄 수가 없습니다 ㅎㅎㅎ

평일에는 네일샵 원장님으로,

주말에는 무대위 끼넘치는 댄서로,

요즘은 미싱도 배우고, 캘리그라피도 배우고, 역사문화탐방도 다니고,,,,,

새벽에 수영하러 가고….

참… 빡세게 산다..

그러고보니 저나 아내나 둘 다 비슷하죠?ㅎㅎㅎ

우리우정 변치말자!!


생각정리소 싱싱무의 스토리는 계속됩니다.

마지막 업데이트 2026년 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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